안성 만정리 신기유적은 대규모 택지개발 조성사업 시행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문화재 구제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조사되었다. 현재는 공동주택이 건립되어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을 비롯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지석묘·석관묘, 초기철기시대 토광목관묘, 통일신라시대 주거지, 우물, 굴립주 건물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주거지, 석곽묘, 토광묘 등 465기의 다양한 유구 및 1200여점유물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유형인 흔암리식·역삼동식·송국리식이 확인되어 안성·평택지역이 전기에서 후기로 이행하는 문화점이지대임 알 수 있다. 지석묘 및 석관묘는 묘역을 이루어 확인되었고 지석묘는 경기 남부지역에서 종종 확인되는 개석식 및 반수혈식의 북방식 지석묘이다.
초기철기시대 토광목관묘는 기원전 4~1세기에 해당하는데 매장주체부는 통나무관과 판재관을 이용하였으며 세형동검, 동촉, 철촉, 석촉, 장신구, 흑도장경호, 점토대토기가 목관내부와 목관외부 충전토에서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굴립주 건물지는 구릉과 계곡에 입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릉형 취락은 넓은 경작지를 배경으로 한 농경중심의 최하위 촌락단위체로 판단된다. 이는 농업생산력과 취학의 형성 비용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정성, 쾌적한 주거환경적 측면을 적절히 고려한 입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취락은 동일한 입지를 보이면서 거의 동시기에 급속히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신라가 당과의 전댕이후 한강유역의 외적 불안요소가 해소되면서 중앙의 직접적인 개발계획의지가 소규모 촌락단위체가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이후 주거지와 묘는 동시기에 위치를 달리하여 조성된 것이 주목된다. 주거지는 아궁이, 구들, 출입구,저장고, 배수로 등의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 타원형이다. 묘는 조사유적의 70%를 차지하는데 대부분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후 청동기시대 주거지 · 석관묘 · 지석묘, 초기철기시대 토광목관묘, 통일신라시대 굴립주 건물지, 조선시대 주거지 등 주요 유구는 유적지내에 조성된 유적공원으로 이전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경기도시공사, 2009, 『안성 만정리 신기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