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극락보전(神勒寺極樂寶殿)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이다.
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원효가 지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나옹화상이 오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영릉(英陵)이 여주로 이장된 조선 예종 원년(1469)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願刹)로 삼았고, 성종(成宗) 3년(1472)부터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져 성종 4년(1473)에는 보은사(報恩寺)라 개칭되었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 한 것은 미륵 또는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말을 막았다는 설과 고려시대에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말을 인당대사가 신의 힘으로 제압했다하여 마을 사람들이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숙종 4년(1678)에 지어진 후 정조 21년(1797)에 수리되기 시작해서 정조 24년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장대석(長臺石)의 3벌대 기단위에 세워진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이 갖춰진 기단에 놓인 자연 초석 위에 민흘림 기둥이 세워져 공포가 결구되고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전면 공포에는 쇠서 끝에 연봉이 장식되어 있으나 후면 공포의 쇠서는 연봉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17세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는 불단 위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위에 화려한 닫집이 꾸며져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중앙 부분에만 우물반자가 가설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작은 빗천장이 있다. 또한 영조 49년(1773)에 제작한 범종과 후불탱화가 있다.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오는 ‘천추만세(千秋萬歲)’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입체감 있게 쓰여져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수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여주문화원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 현황』
『(지도로 보는)아름다운 경기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