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향교(楊根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향교길 45(옥천리 817-1번지)이다.
양근향교는 조선 중종(中宗)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향교는 지형에 따라 명륜당을 앞에, 대성전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의 일반적인 배치구조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인 대성전(大成殿)과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인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고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인 명륜당(明倫堂)과 각각 정면 4칸, 측면 1칸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내삼문(內三門)과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敎官)이 정원 30명의 교생(敎生)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甲午改革 : 1894)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공자(孔子)를 제사 지내는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6~7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자료출처 : 양평문화원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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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양평문화원
양근향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조선초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학교조에 在郡西三里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향교 창건 이후의 연혁이나 중수 사실은 향교소장 고문서나 기문 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다. 다만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에는 읍치에서 북쪽 13리에, 『경기지』에는 읍치에서 북쪽 15리에 향교가 있다고 하여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8세기 중엽이전에 향교가 이건(移建)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서울, 경기도의 향교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