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관아지(楊洲官衙址)는 경기도기념물 제167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399번길 15이다.
양주 관아지는 1504년(조선 연산군 5년) 목(牧)을 폐하였다가 1511년(9중종 6년) 다시 복구한 이후 1922년 치소를 시둔면(현 의정부시 의정부1동)으로 옮기기 전까지 412년 동안 양주의 구읍(舊邑)이 위치하였던 유서깊은 곳이다.
구읍 중앙에는 동헌(東軒)이 자리 잡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외동헌과 내동헌이 29칸이었고 좌우의 내사와 행랑을 합쳐 54칸이며 내외대문과 협문이 8칸이었고 외동헌의 뒤쪽에는 과학당 1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앞쪽 좌우에 향청, 힐청, 관청, 집사청, 사령청 등 부속건물이 위치하였는데 향청은 대문과 행랑을 합쳐 14칸이었고 동쪽에는 향교가 있었으며 관아지 남쪽 관도 주변에는 연당(蓮塘)과 승학교가 있었다. 관아 남서쪽에는 빙고(氷庫)와 동서 간선도로 주변에는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또한 서쪽에 사직단과 동쪽에 성환사 등이 있어 제법 큰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양주 관아지는 현재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중앙에는 안마당이 있고 그 북쪽에 1997년 복원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동헌이 위치하고 있다. 마당 서쪽에는 최근 이곳으로 이건된 선정비군이 있으며 동헌 뒤쪽에는 1792년(정조 16년) 왕이 광릉에 행차하던 길에 민정을 살피고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쏜 뒤 잔치를 베푼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어사대비가 있다. 관아지 입구 주변에는 옛 사령청의 초석과 장대석렬, 훈련장 건물의 초석, 석루조, 비의 개석이 남아있고 관아지 동북쪽에는 간아 누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장 초석과 고복석, 장대석 등의 유물이 남아있다. 관아지 서쪽의 작은계류 상류쪽에 작은 폭포를 중심으로 조성된 원림이 있는데 계류 주변에 ‘금화동문’, ‘화다’, ‘관민동락’ 등의 글씨가 새겨진 석재가 남아있어 이곳이 당시 관아의 후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양주 관아지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어 유구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인 입지와 도로 구조, 향교와 후원의 위치,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유구와 유물 등은 양주 구읍의 구조를 잘 간직하고 있으므로 경기지역 읍성과 관아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도, 2005)
『양주 관아지』
『양주시』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