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향교(楊州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423번길 50이다.
양주향교는 태종 1년(1401)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2년(1610)에 재건되었다.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1958년 양주지방 유림들에 의해 재건되었고 1984년에 복원되었다. 향교 앞에는 45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다.
향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성현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지방 문묘(文廟)이며, 유현(儒賢)들의 학습 및 강론장으로 많은 유학자를 양성 ·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 기관이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입구인 외삼문을 지나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 내삼문 안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는 외삼문은 14cm 가량의 1단 화강석 물갈기 기단위에 화강석을 놓고 원통형 기둥이 문의 하중을 받게 한 후 익공을 짜올린 초익공식 건축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무출목 초익공 양식이다. 자연석 쌓기를 한 73cm 화강석 기단에 화강석 주초석이 겹처마를 한 팔작지붕과 4각기둥을 떠받들고 있으며, 창호는 정면 5칸마다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형식은 무출목 무익공으로 보아지가 있다. 내부천정은 연등천정이며, 벽체는 콘크리트이고 단청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우측 1칸은 개조하여 온돌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널마루를 깔았다. 명륜당 뒤편으로는 내삼문인 솟을삼문이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마당 좌우측의 동, 서 행랑과 정면 기단 위의 대성전에 이른다.
배향공간인 대성전은 내부의 중앙에 공자를 비롯한 사자(思子) · 맹자(孟子) · 안자(顔子) · 증자(曾子) 등 중국의 5성(五聖)과 정자(程子) · 주선(朱善) · 고순(固順) · 정순(程順) 등 송조4현(宋朝四賢), 그리고 설총(薛聰) · 최치원(崔致遠) · 안향(安珦) · 정몽주(鄭夢周)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공자 탄신일에 제사 지내고 있다. 장대석을 고르게 쌓은 5cm 기단을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쇠시리를 한 원형 화강석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통형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한식골기와를 얹은 잔층 맞배형식의 겹처마 집으로 단청이 화려하다. 건물 전면에 퇴량을 두었고 내부 천정은 연등 천정으로 내부 부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공은 사다리꼴이며,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별도의 행공첨자는 걸지 않았으며 보를 지지하는 보아지가 있다.
이처럼 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典籍)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敎官)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敎生)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甲午改革:1894)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점차 없어지게 되고 봄 · 가을에 공자를 위한 제를 올리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6~7명이 담당하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양주시청 및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경기도, 2005)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
『서울·경기도의 향교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