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산성(竹州山城)은 경기도기념물 제6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매산리 산106번지)이다.
죽산은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는 중부 내륙이 길목이어서 일찍부터 서울로 통하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고려 고종(高宗) 23년(1236) 몽고군이 이곳의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고려군은 적과 싸워 이겼다. 몽고군은 다시 포(砲)를 앞세워 공격을 하였지만 역습을 당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갔다. 이 때 성을 지킨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는 일찍이 귀주성(歸州城) 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있어 대비를 하였기에, 백성들은 그를 ‘귀신’ 또는 ‘신명(神明)’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1636~1637) 때에는 진을 치기도 하였다.
현재 이 성의 둘레는 1,688m이고, 높이는 2.5m 안팎이며 부분적으로 수리를 많이 하였다. 남쪽 성벽의 양쪽 끝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는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雉城)이 남아 있으며, 남문 쪽 성 바깥에는 당시에 팠던 도랑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어 이곳에 지휘대가 있었던 것 같다. 성 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전과를 올린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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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안성시청
송문주(宋文胄)
고려후기 장군으로 본관은 진천. 1차 몽고 침입시 박서 장군의 휘하에서 종군하여 그 공로로 고종 23년(1236) 죽주의 방호별감으로 승진되었다.
이해 9월 몽고군은 죽주성에 이르러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장군은 성중의 군리들과 합심하여 몽고군을 격퇴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큰 전공을 세웠다.
그는 귀주성의 전투경험을 통하여 몽고군의 공성술(功城術)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몽고군의 공격을 예측하고 군사들에게 “오늘은 적이 어떤 장비를 쓸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방법으로 이에 응전하라.”고 지시했다.
적은 그의 말대로 공격해 왔으므로 그 대비책은 손쉬웠다.
그의 뛰어난 지략을 보고 성안의 군사들은 모두 그를 신명(神明)이라 일컬었다.
죽주성의 뛰어난 전투로 그는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에 임명되었다.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경기도의 성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