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김씨삼강정문 (瑞興金氏三綱旌門)은 경기도기념물 제77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산96번지이다.
서흥김씨 일문에서 배출된 충신 한 분과 효자 한 분 , 열부(烈婦) 두 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김충수(金忠守 : 1549~1592)는 임진왜란(1592~1598) 때 의병장으로서 죽산에서 접전하다가 적에게 붙잡혔는데 아들 함(涵 : 1568~1598)이 부친을 구하고자 적진에 쳐들어가 함께 전사하였다.
함의 손부(孫婦) 온양정씨(溫陽鄭氏)는 병자호란(1636~1637) 때 적병에 쫓기게 되자 못에 투신하였고 청주한씨(淸州韓氏)는 부군이 별세하자 슬하에 자식이 없어 부도(婦道)를 못지켰다 하여 따라 순절하였다.
선조(宣祖) 39년(1606)에는 김함에게 효자 정문(旌閭:효자·충신·열녀 등을 기리는 문을 세워 표창하는 것)이 내려졌고, 숙종(肅宗) 26년(1700)에는 김충수에게 충신 정문이 내려졌으며, 영조(英祖) 13년(1737)과 영조 16년(1740)에는 두 부인에게 각각 열부 정문이 내려졌다.
삼강정문은 월향리의 낮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는 고삼 저수지 쪽에 있었으나 후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본채 주변에는 담장을 두르고 전면에 일각문(一脚門)을 두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익공계 팔작집인데 전면에만 홍살이 있어 개방되어 있다. 낮은 장대석(長臺石) 기단에 팔각형 장초석이 놓이고 짧은 기둥에 이익공이 결구되어 삼량(三樑)의 가구가 짜올려져 있다. 내부에는 네 분의 정문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삼강정문은 건립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정문의 현판을 모아 보관하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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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안성시청
김충수(金忠守)
생몰연대 : 1549~1592
효자로 본관은 서흥(瑞興), 호는 창죽헌(倉竹軒), 죽산부 고삼면 월향리에서 출생했다. 6세에 서당에서 글을 깨우쳤으며 재주가 뛰어났다. 9세때 부친상을 당하였고 이후 모친 한씨가 종창을 앓았는데 의원이 입으로 고름을 핥아내는 것이 즉효라 하자 이를 시행해 효험을 보았다. 이후에도 모친의 봉양에 열과 성을 다해 효자로서의 칭송이 자자했다.
45세에 의병진을 조직하여 죽주성으로 달려가 왜적과 격전을 벌였다. 수차례에 걸친 진퇴와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적병 100여 명을 통쾌히 살해했다. 하지만 노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에 대항하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이에 그의 아들 함은 적전을 뚫고 부자가 합세하였으나 10월 말경 최후를 맞이하였다.
『문화재 안내문안집. 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