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남재묘역(龜亭南在墓域)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282-7번지이다.
조선 개국공신 남재(南在: 1351~1419)의 묘이다. 호는 구정(龜亭), 본관은 의령, 검교시중 을번(乙蕃)의 아들로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어려서부터 가난하였지만, 유학을 공부하여 경제지재(經濟之才)를 지녔다는 소리를 들었고 산수(算數)에 능하여 당시 사람들이 남산(南算)이라고 불렀다. 1371년(공민왕20)진사시에 합격해 관직에 올랐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할 때, 아우 은과 함께 이성계를 도왔다. 그 공으로 회국공신(回國功臣)에 봉해져 철원부사로 나갔다.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1등으로 오르고 1396년(태조5) 도병마사가 되어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정안군 방원이 왕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우의정, 감춘추관사, 좌의정, 영의정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19년(세종1) 12월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 태조의 묘정(廟廷)에 추가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구정유고(龜亭遺稿)』가 있다.
묘는 별내면 화접리 주을곡(注乙谷)에 동남향하고 있다. 본래는 둥근 봉분 이었으나 현재는 직사각으로 봉분을 만들고 좌우에 호석을 만들었다. 봉분 앞에 새로 만든 모표를 세웠고 그 앞에는 혼유석, 장대석, 상석, 향로석을 놓고 망주석과 장명등을 새로 놓았다. 봉문 좌측에는 신구(新舊) 묘비가 1기씩 있다. 비신은 월두형(月頭形)이고, 비좌에는 복련과 안상문을 새겨 놓았다. 비신의 뒤쪽에는 이 묘비가 오래되어 1898(광무2) 3월 15대손 군수 계미(啓迷), 16대손 전 군수 기원(起元)이 돌을 깎아 새로 세운다는 내용의 비문이 있다. 신도비는 1892년(고종29) 건립된 것으로 근처 사당인 충경사(忠景祠) 옆에 안치되어 있다. 비신, 비좌, 옥개석으로 이루어진 신도비는 최근 새로 만든 신도비와 함께 정면 3칸, 측면 1칸의 방풍판을 갖춘 맞배지붕인 보호각 안에 자리한다. 비좌는 민무늬이고 옥개석은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비문은 10대손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지어놓은 것을 15대손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쓰고 15대손 의정부 좌참찬 남이익(南履翼)이 전을 했다.
(자료출처 : 남양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남양주문화재대관』
『남양주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