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묘역(權常墓域)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0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마조리 산24-4번지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효행으로 이름을 떨친 권상(權常: 1508~1589)을 모신 유택이다. 권상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길재(吉載)이다. 아버지는 전생서참봉(典牲暑參奉) 진(振)이다. 7세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호곡(號哭)함이 마치 어른과 같았으며, 효가 지극하였다는 사신의 평이 있다. 1528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사(進仕)가 되고, 문소전참봉(文昭殿參奉)을 거쳐 1573년에 용강현령을 지냈다. 1583년 선공감정(繕工監正)에 이르렀으며, 이 해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통정(通政)의 계급에 올랐다. 1587년 노인직(老人職)으로 가선(嘉善)의 위계를 받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후 청주의 백록서원(白鹿書院)에 제향되었다.
묘역의 봉분은 단분(單墳)으로,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안정나씨(安定羅氏)와의 합장묘이다. 원래의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 1기, 장명등 1기, 문인석 2기, 혼유석 1기, 향로석 1기 등이 있다. 그리고 묘역의 하단 50m 아래에는 신도비 1기가 세워져 있다. 최근에 묘역을 새로 정비한 흔적이 보이며 호석, 망주석, 계체석 등은 새로이 설치된 것이다.
봉분의 앞의 묘비는 원수방부(圓首方趺)의 형태인데 비음에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 등을 확인할 수 없다. 방부의 상단에는 연판문(蓮瓣汶), 하단에는 당초절지문(唐草折枝文)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묘역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장명등은 옥개석과 몸체로 구성되어 있고, 몸체의 화창(火窓)은 비록 작지만 내부 상단에 홈이 파져있어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어 있다. 몸체의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에는 한 구획씩 칸을 조성하여 안상문(眼象紋)을 조각하였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에 홀(笏)을 든 모습으로 의습선(衣褶線)이 비교적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다.
묘역의 하단 약 50m 아래에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비각(碑閣)내에 배치되어 있는 신도비는 이수(螭首), 비신(碑身), 비대(碑臺)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이항복(李恒福 : 1556~1618)이 찬(撰)하고, 이소가 글을 썼으며, 노직(盧稷 : 1545~1618)이 전액(篆額)을 하여 1606년(선조 39년)에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비신의 전면에만 새기었는데 전액은 ‘증영의정권신도비명(贈領議定權神道碑銘)’이라 횡서(橫書)하였다. 이수와 비신은 하나의 백대리석으로 사용하여 만들었고, 이수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유운문(流雲紋) 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김포시 금석문대관』
『김포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