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동래정씨동래군파종택(軍浦東來鄭氏東來君派宗宅)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로110번길 20-11이다.
이 가옥은 동래정씨 동래공파의 종가집으로 유교적 공간질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제적인 쓰임새를 중시하는 조선후기 살림집의 시대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동래공파 종택은 수리산의 줄기가 동남쪽으로 뻗어내려 남향으로 형성된 골짜기의 동쪽자락에 서향으로 입지하였는데, 입향조는 대제학·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정사룡(鄭士龍 : 1491~1570)이다. 그는 훈구파(勳舊派)의 중진 허백당(虛白堂) 정난종(鄭蘭宗 : 1433~1489)의 손자인데, 본 가옥의 맞은편 산 중턱에 파시조(派始祖)인 정난종선생의 묘가 있어 이로 인해 입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난종은 황해도관찰사로 재임할 때 이시애의 난(1467)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1470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동래군(東萊君)에 봉해져 동래정씨 동래공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사랑채는 1877년에 지어졌으며, 안채는 이보다 100여 년 전에 지어졌다고 전하는데, 안채 대청마루 종도리 장여 측면 상량문에 ‘성상즉위칠년(聖上卽位七年)’이라는 글자가 보이므로 안채는 조선 정조7년인 178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작은 사랑채, 행랑채 등 4동이 남아있는데, 원래는 사랑마당 바깥쪽으로 행랑, 작은 사랑채 뒤에 초당, 안채 뒤에 사당, 외양간 등이 있었고, 바깥 행랑 앞에는 연못이 있었다. 초당과 오양간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고, 사당은 60년대에 훼철되었으며, 방앗간이 있던 바깥행랑채는 70년대에 무너진 것으로 전한다.
사랑채는 전면5칸으로 구성된 전후툇집으로 평면 구성이 독특하다. 향좌측 첫째 칸은 반 칸을 앞으로 더 내밀어 1칸 크기로 난간을 두른 누마루로 구성하고 문간쪽으로는 아궁이를 두고 상부에 사랑방에서 연결되는 다락을 두었다. 사랑방은 두번째와 세번째 칸에 걸쳐 방을 들이고 후면에 외벽이 있는 툇마루를 두어 누마루 뒤 편 다락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네 번째 칸은 마루방인데 뒤편에 안채로 드나들 수 있게 마루복도를 두었다. 다섯째 칸은 행사청이라고 부르는 방으로 전면으로는 창만 두고 후면에 툇마루를 놓아 안마당 쪽을 향하도록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사랑채는 공간구성이 매우 기능적이고 평면 분할이 독특하여 주목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작은 사랑채는3칸으로 구성된 전퇴집으로 위치와 규모등이 독특한데, 예전에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간채는 원래 3칸집으로 사랑채와 연결되는 부분에 대문을 두고 나머지 칸은 창고로 사용되던 것이다. 후에 다시 5칸을 덧달아 지어 안채의 폐쇄성이 강해졌다.
이 가옥은 기능성을 중시한 조선후기 살림집의 시대성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 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돋보인다.
(자료출처 : 군포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군포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경기도 종가문화 조사연구 및 활용프로그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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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동래정씨동래군파종택.pdf (155.3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