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선생묘(金稛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105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능평리 산89-1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김균(?∼1398) 선생의 묘이다. 고려 공민왕 9년(1360)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공양왕 때에 전법판서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2인으로 정해져서 중추원 부사로 승진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이라는 공신이름을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고, 죽은 뒤에 제숙의 시호가 내려졌다. 가족 중에 태조의 공신이 많이 배출되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진급 정치집단을 이루었다.
묘역은 곡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앞부분에 장대석으로 호석(護石)을 쌓아 놓았다. 봉분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이 위치한다.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석물 중 상석 · 향로석 · 장명등은 근래에 새로이 설치한 것이다. 상석의 좌측에는 묘비가 있으며, 묘역의 전방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송병선(宋秉璿 : 1836~1905)이 찬(撰)하고 윤용구(尹用求 : 1853~1939)가 글을 쓰고 김영한(金寗漢)이 전액(篆額)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묘역이 실전(失傳)되었다가 이 묘역이 있던 고을 유수(留守)로 온 후손 김사목(金思穆 : 1740~1829)이 수소문하여 찾았다고 기록되어, 현재 묘역의 건립 시기는 18세기 후반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묘비 역시 그 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화재안내문안집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