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사지(開元寺址)는 경기도기념물 제11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731-73이다.
개원사는 남한산성관리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316m 거리에 위치한다.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 산성천 다리를 건너 신선계곡 골짜기로 접어들면 개원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는 ‘淸凉山 開元寺 曺溪門(청량산 개원사 조계문)’이라고 되어 있다. 천왕문안에는 근래에 세운 비석군과 범종각, 화현전, 대각전, 요사체, 탑, 불유각 등이 들어서 있다.‘개원(開元)’이란 근본을 새로 시작한다 또는 나라를 세운다는 뜻으로서 신생국가의 연호에 사용되는 예가 많다.
이 절은 조선 인조(仁祖) 2년(1624)에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도(僧徒)들을 총지휘하는 본영 사찰(本營 寺刹)로 창건되었다. 남한산성 내에는 원래 있었던 망월사(望月寺)와 옥정사(玉井寺) 외에 7개의 절이 더 창건되었는데 개원사를 본영 사찰로 활용하고 나머지 8사는 각 도의 승병(僧兵)을 주둔하게 하여 개원사는 조선 승병의 총지휘소로 사용되었다. 그 후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경장(甲午更張) 때 의승방번(義僧防番)이 폐지될 때까지 370여년간 수도 한양을 지켜 온 호국사찰로 번창했으며, 전국 사원들의 승풍(僧風)을 규찰하는 규정소(糾正所)가 설치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불교의 총본산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인조 15년이래 대장경이 보관되어 왔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인조 15년 대장경을 실은 배가 서호(西湖)에 닿았는데 사람은 없고 그 함위에 ‘중원개원사간(中原開元寺刊)’이라고 쓰인 책함만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인조는 전국에서 개원사라는 이름의 절을 찾아 봉안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유일의 개원사였던 이 절에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란보(金란褓) 열 벌로 싸서 봉안되었던 대장경은 안타깝게도 1970년 화재 발생 때 법당·누각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전소되었다. 그 후 작은 건물 1동이 겨우 남아 있었으나, 선효화상(禪曉和尙)이 신도들과 함께 10여 년 간에 걸친 원력(願力) 끝에 대각전(大覺殿)·요사(寮舍) 등의 건물을 신축한 후 새롭게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군기고지(軍器庫址), 누각지(樓閣址), 종각지(鐘閣址) 등에는 초석(礎石), 돌계단, 박석(薄石) 등이 남아 있어 옛 개원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짐작케 한다. 또한 이 사찰에는 남한산성 축성과 산성 수호 승군들이 사용했던 유분(鍮盆) 1점과 석장(石杖), 옹기(甕器), 함지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22일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이며, 경기도에서는 수원 화성에 이어 두 번째이다.
(자료출처 : 광주시청 / 광주문화원)
『문화재안내문안집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건축유적 발굴조사 자료집-사찰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