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안대군방석묘역(宜安大君芳碩墓域)은 경기도기념물 제166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 152번지이다.
조선 태조(太祖)의 제8남인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 : 1382~1398)을 모신 유택이다. 이방석은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 : ?~1396)의 소생이다. 1392년(태조 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398년(태조 7년)에 왕위계승권을 둘러써고 일어난 무인정사(戊寅定社, 일명 제1차 왕자의 난)때 시해되었다. 1406년(태종 6년)에 소도공(昭悼公)의 시호가 내려졌고, 1412년(태종 12년)에 다시 오원소도공(五原昭悼公)으로 증시되었다. 이후 1680년(숙종 6년)에 의안대군(宜安大君)으로 추증되었으며, 세자빈(世子嬪) 심씨(沈氏)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순천부부인(順天府夫人)에 추증되었다.
의안대군 묘역은 앞에 세자빈(世子嬪) 심씨(沈氏)이 묘와 묘비가 있고, 바로 뒤에 의안대군의 묘와 묘비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심씨의 묘비 앞쪽으로 상석과 향로석, 문인석 2쌍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봉분이 앞뒤에 조성되어 있으면서 상석과 문인석 등을 같이 사용하게 하는 형태의 묘역도 부부의 합장묘(合葬墓)로 간주한다. 2기의 봉문 모주 화강암의 직사각형 장대석(長大石)으로 장방형이 되게 호석(護石)을 조성하여 봉분을 만들었기에 봉분의 형태는 장방형분(長方形墳)이다. 이러한 봉분의 형태는 고려시에대 유행하여 조선시대 초기까지 전해내려 왔던 양식이다. 봉분 앞의 묘비는 모두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양식인 화관석(花冠石) 형태의 비로 의안대군의 묘비는 1449년(세종 31년) 2월에 건립되었고, 심씨의 비는 이보다 세달 늦은 5월에 건립된 것이다. 묘비의 전면에는 각각 ‘유명조선국오원소도공지묘(有明朝鮮國五原昭悼公之墓)’, ‘유명조선국삼한국대부인심씨지묘(有明朝鮮國三韓國大未人沈氏之墓)’라고 새겨져 있어 1412년(태종 12년)에 증시된 시호(諡號)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묘역 전방의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문인석 2쌍은 모두 복두(幞頭)에 공복(公服)을 입고 홀(笏)을 들고 형상으로 안면에 턱수염을 조각하는 등 모습이 거의 흡사하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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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문화재청
능, 원, 묘의 구분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 원, 묘로 분류된다.
1. 능(陵) : 추존왕,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
2. 원(園) :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
3. 묘(墓) :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
『2001 문화재안내문안집』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