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온사(穩穩舍)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길58이다.
온온사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관아에 딸린 객사였다. 객사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서 궐패와 전패를 모셔놓고 왕이나 왕비의 생일, 초하루, 보름에 예를 올리는 향귈망배를 지내는 곳이자, 왕명을 받들어 지방으로 여행하는 관리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던곳이다.
과천의 객사는 인조27년(1649) 현감 여이홍이 객사 동헌을 건립하여 창건되고, 현종 7년(1666년) 남창조에 의해 객사 서헌이 건립되어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규모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왕이 남행할 때에는 과천을 경유해야 했고, 경우에 따라 왕이 묵어 가야 했으므로 규모가 컸던 것이다.
온온사란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정조가 생부 사도세자의 원묘인 영우원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현륭원으로 고치고 이곳에 참배하기 위해 능행할 때(1790년 2월 11일) 과천의 객사에 머물며 주위경관이 좋고 쉬어가기 편하다 하여 온온사(穩穩舍)란 현판을 내림으로써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때 관아동헌에는 옛 별호인 부림을 따서 부림헌(富林軒)이란 현판도 하사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온온사는 일인들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과천면의 청사로 사용하다 1932년 기존 건물을 헐고 원형을 변형하여 새로 짓고 사용되다가 1986년 12월 12일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 객사의 형태를 참고로 하여 완전 해체 복원하였기 때문에 원형을 찾는 데는 새로운 조사가 필요하다.
객사의 일반적인 형태는 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실을 두었으며, 앞면에 중문, 외문 그리고 옆면에 무랑 등이 설치되는 것이고 전패와 궐패를 모시는 정당에는 기와나 돌을 깔았고, 익실에는 온돌을 놓아 숙박이 가능토록 하였다. 현재의 온온사 건물은 석축 위에 정당 3칸, 좌우익실 3칸을 둔 정면 9칸, 측면 2칸의 구조로 팔작지붕집에 정당 부분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이다.
온온사 입구에는 600년이 넘은 둘레 6.5m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무학대사의 수제자 ‘열’이 과주(과천의 옛 이름)의 치소를 이곳에 정하고 기념식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나무 옆에는 15기의 역대 현감 선정비가 있고, 이웃한 남촌가든에는 희귀수목인 백송과 금송이 있어 학습자료가되고 있다.
(자료출처 : 과천시청 / 과천문화원)
『과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지도로 보는) 아름다운 경기건축』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