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사적 제32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용인 서리 상반 고려백자가마터 유적정비와 보존, 학술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학술조사하였다.
용인은 일찍부터 요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도기소와 자기소의 기록이 있을뿐만아니라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의 가마터 72기가 시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동면에는 19개소의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는데 서리일대에서 이번에 발굴조사한 상반가마터를 비롯하여 호암미술관에서 발굴조사한 서리 중덕가마터외에 3곳의 가마터가 추가로 발견되어 이 지역이 고려시대 백자 생산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리 상반가마터 발굴조사에서 가마 1기, 폐기장, 석렬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가마 규모는 길이가 약 53m에 달하고 너비는 1.5~1.7m, 경사도 16~20°로 아궁이 4개소, 측면 출입구 4개소가 확인되었다. 가마는 반지하식 토축 단실 등요로서 아궁이의 숫자와 위치로 보아 옮겨가며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마는 3개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1구역에서는 아궁이 2개와 소성실이 확인되었으며 입구는 갑발을 이용해 조성하고 벽면은 진흙과 갑발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2구역에서는 2개의 아궁이와 출입구가 확인되었으며 진흙과 할석을 이용하여 벽면을 조성하였고, 3구역에서는 소성실과 연도, 출입구 등이 확인되었는데 벽면은 진흙과 갑발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연도는 현재까지 확인된 고려시대 가마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시설로서 갑발을 사용하여 배연 시설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용인 서리 중덕 가마, 시흥 방산대요, 여주 중암리, 강진 용운리, 삼흥리, 황해도 원산리 가마의 구조와 전체적으로 유사하나 축조 방법이나 길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유물 기종은 일상 용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보, 궤로 추정되는 제사용기도 상당수 출토되어 제례자기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양은 음각, 양각, 투각, 철화 등의 다양한 기법이 확인되었으며, 문양의 소재는 화문, 당초문, 초문 등이 있다.
[참고문헌]
기전문화재연구원·용인시·용인문화원, 2007, 『용인 서리 상반고려백자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