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교 (廣州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하남시 대성로 126-13(교산동 277-3번지)이다.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광주향교가 창건된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원래 고읍(古邑) 서쪽에 있었는데 숙종(肅宗) 29년(1703)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광주향교는 마을 후면의 평지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외삼문과 대성전을 잇는 직선축상에 앞쪽으로는 명륜당(明倫堂)과 서재(齋)·동재터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廡)가 위치하여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으며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 민흘림기둥 위에 공포가 결구되어 칠량(七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내부에는 공자(孔子)와 4성(聖), 송나라와 우리 나라 20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공포의 형태나 가구 수법으로 보아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민도리 맞배집으로 전면에 개방된 퇴칸을 두었다. 내삼문은 솟을삼문 형식인데 익공(翼工)의 형태로 미루어 18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된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집인데 중앙의 6칸 대청 좌우에 툇마루가 달린 1칸 반씩의 온돌방이 있다.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집으로 내부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 툇마루가 달려 있다.
광주향교는 경기 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동·서재와 동·서무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이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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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하남문화원
향교는 고려 6대 성종조에 전국에 반포한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목. 부. 군. 현의 행정구역 단위로 서당에서 배운 유생들을 선발하여 교육하는 기관으로 오늘날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광주향교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廣州郡誌」에서는 ‘본래 古邑 서쪽 2리에 있었는데 1703(숙종 29년)에 廣州府尹 이제가 고골현재의 터로 이전하였으며 남한산성에서 북쪽으로 10리’라고 하였고 「重訂南漢誌」 에도 똑같은 기록이 있으므로 장소를 옮겨 세운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광주향교가 옮겨 오기전 현재의 자리 주변은 광주목 행정기관의 중심인 관아의 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주향교의 건물은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로서 제향을 위한 건물로는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고,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로는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다. 향교의 등위에 따라 건물의 구조나 크기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위에서 말한 건물들은 향교에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 건물들이다.
광주향교의 배향 인물로는 대성전에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등 오성위를 모시고 있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송나라의 2현과 우리나라 18현을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조의 종호, 신라의 설총, 고려의 안향, 조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등 10위, 서무에는 송조 주희,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정몽주, 조선의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 10위가 모셔져 모두 25위을 모시고 춘추로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춘계는 음력 2월 상정일에, 추계는 음력 8월27일 공자님 탄신일에 제향을 올린다.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안내문안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