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앞 雙獅子 石燈)은 보물 제38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번지이다.
현재 천보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회암사는 고려 중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동쪽 능선산에 이른바 삼조사 사리탑이라 하여 지공, 나옹, 무학의 3기의 부도가 남북 일렬로 배치되었으며 각 부도탑은 탑비와 석등을 함께 구비하고 있다. 회암사는 공민왕 21년(1372)부터 우왕 2년(1376)사이에 나옹선사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루어지기 앞서 그의 은사 지공의 사리를 모셔와 부도를 세웠다. 나왕의 제자 자초 무학대사는 일찍이 조선시대 초기에 불교계는 급변하는 시기를 맞이하면서 연경조에서 높은 학덕과 교학의 감화를 받았으며, 법천사에서 나옹을 만나 그의 법을 계승하였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와 깊은 인연을 맺어 태조께서 개성으로부터 도읍을 천도하기 위하여 계룡산 도읍터를 답사하기 위하여 행차하던 중 대사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회암사에 들었다. 개성으로부터 천도할 계룡산 도읍터와 후보지 선택에 함께 답사할 것을 대사에게 청하여 동행하기도 하였던 곳이다.
또한 회암사는 태조께서 무학의 사후 사리를 봉안할 곳을 마련해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쌍사자석등은 삼조사 부도가 봉안된 곳 중 가장 낮은 곳의 무학대사 부도 앞에 놓여 있다. 이 석등의 기본형은 방형으로서 대부를 비롯하여 화사 및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완전한 석등이다. 대부는 하대, 쌍사자형 간석, 상대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하대는 방형의 한 장 돌에 지대와 연화 하대석을 조촐하였다. 방형 연화대에 배치된 여판 중 각 일면 중앙에 배치된 연판은 복엽이며 전각부에 배치된 연판은 단엽으로 팔판의 복연을 돌렸다. 판내에 삼산형의 귀꽃문과 넓은 자엽이 조식되어 있는 연판입의 주연단의 각부를 죽여 둥글게 한 수법은 청룡사지 단사자 석등의 연판 조각수법을 반영하고 있는듯 하다. 하대 상면에는 일단의 각형 받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다.
방형의 간주받침 위에 쌍사자형 간주가 간주석을 대신하고 있는 관계로 쌍사자 사각석등이라고도 칭한다. 사자상은 가슴을 서로 맞대고 상대하여 무릎을 꿇고 몸통을 세워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한 장 돌로 조성해 놓았는데 전체적으로 비육한 모습이다. 즉 통일신라시대의 사자처럼 뒷다리를 힘껏 세우고 선 것이 아니라 엉덩이와 함께 후미부를 하대 위에 닿게 하였으며, 두부는 위를 향하여 굳게 다문 구지부와 앞 다리로 상대를 떠받고 있는 형상이다. 사자의 등과 머리모습은 넓적한 평면형을 이루고 있고 왕방울 눈과 둥근 주먹코, 곱슬머리, 잘 다듬어진 꼬리는 잘 다듬어 깔끔한 조각수법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일석으로 된 상대는 하면에 일단의 각을 죽인 괴임이 각출되었고, 측면에 이르면서 모를 죽인 복엽팔판의 양련도 각출되어 있다. 넓은 측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데 화사대 상면은 각 모서리를 죽여 둥글림으로 치석하였다. 화사석은 두 장돌로 화창부위 간격을 두고 옥개를 받치는 지석역할의 부재로 조성되었다. 즉 두 장의 화사석 부재로 구성된 화사부는 각 판장 돌에 화사벽과 양우주를 조촐한 것으로 화사 벽면에는 화창시설이 갖추어 있지 않았다. 다만 두 장 돌판에 양우주와 화사면을 갖추고 있으므로 두장의 화사석 부재를 좌우에 간격을 두고 세워 자연히 전후면에 관통된 화창이 이루게 하는 효과를 얻게 하였다. 그러므로 관통된 화창과 네 모서리에는 원주를 갖춘 훌륭한 화부를 이루고 통창 좌우에는 주연에 얕은 홈이 음각되어 있다. 옥개석부는 한 장 돌에 옥개와 상륜을 조각한 것으로 옥개 하면의 구조는 목조건축의 처마 밑 구조와 같이 옥개받침 대신 평방형과 뺄목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추녀와 사래형도 나타내고 있으며 사래가 시작되는 양부분을 연장하는 부분에서 일단을 각출하고 있다. 낙수면은 중후하여 조선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네 모서리 합각은 추녀마루를 이루고 있으며 전각은 옥개의 곡선과 잘 어울리게 반전되었다. 옥개석 정상에는 높고 낮은 이단의 원자를 각출하였고 두툼한 보륜을 각출한 위에 보주를 조성하였다.
우리나라 고유의 석등은 그 기본이 팔각형이나 고려시대에 들면서 방형으로 변형된 예도 있으며 이러한 형식은 곧 조선시대에 까지도 전승되었다. 충청북도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유존하는 보각국사정혜원융탑 앞 사자석등의 각부 양식수법은 이 쌍사작석등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일예라 하겠다. 대석의 연판조각은 양자가 흡사한 것이며 더욱이 화사석의 양식에서 네 모서리에 원주를 배치하고 창구를 전후로 관통시킨 것 등은 전적으로 동일한 조성 의장이었던 것 같다. 청룡사지의 석등은 조선초기(1392~1394)의 건립으로 확실한 바 이 곳의 쌍사자석등도 여기에 비정해 볼 때 거의 동년대의 것으로 추정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2, 개정판)』, 문화재청, 2005)
『(국보·보물)문화유산을 찾아서-경기도, 인천광역시』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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