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봉서원(德峰書院)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108번지 이다.
조선 숙종(肅宗)때의 문신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 : 1545)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하다 유배 도중 별세한 양곡(陽谷) 오두인(吳斗寅) : 1624~168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숙종 21년(1695)에 창건되어 숙종 23년에 사액되었으며 고종(高宗) 8년(1871)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던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덕봉서원은 마을 입구의 언덕에 남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강당인 정의당(正義堂)과 동·서재가 있으며 위쪽 터에는 사당인 덕봉사우(德峰祠宇)가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으로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그 옆에 영정이 모셔진 감실(龕室)이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건물이나 외관이 당당하며 부재의 치목(治木)과 결구 기법이 우수하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 팔작집으로 중앙의 4칸 대청 좌우에 각각 1칸씩의 온돌방이 있다. 전면에는 장초석(長礎石)이 사용되었으며 대들보와 서까래 등에 자연 곡선에 따라 휜 부재가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강당 뒤쪽의 동·서재는 1940년대에 훼철되었다가 새로 복원된 것이다.
덕봉서원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건물도 훌륭하고 외부 공간도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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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홈페이지)
오두인(吳斗寅)
생몰연대 : 1624(인조 2)∼1689(숙종 15)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징(元徵), 호는 양곡(陽谷). 병마절도사 정방(定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겸(士謙)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상(翔)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효길(孝吉)의 딸이다. 숙부 숙(淑)에게 입양되었다.
1648년(인조 26)에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1650년(효종 1) 지평(持平)을 거쳐 1656년 장령(掌令), 1661년(현종 2) 헌납(獻納)·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67년 부교리(副校理)·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공조참판으로서 사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호조참판, 1682년에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다음해 공조판서에 올랐다. 1689년 형조판서로 재직중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각하자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세번이나 임명되고도 나가지 아니하여 삭직당하였다.
이해 사직(司直)을 지내고, 5월에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폐위되자 이세화(李世華)·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려 국문을 받고 의주로 유배도중 파주에서 죽었으며, 그 해에 복관되었다.
1694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파주의 풍계사(豊溪祠), 광주(光州)의 의열사(義烈祠), 양성(陽城:지금의 경기도 안성)의 덕봉서원(德峰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양곡집』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안내문안집. 2』
『한국의 경기지역 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