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룡고가(李海龍古家)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109-9(청용리 78번지)이다.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살림집이다. 안채 마루도리에는 정조(正祖) 21년(1797)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안채와 사랑채가 이 시기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에 완전 멸실되었으나, 2006년 11월에 복원하였다.
이 집은 서운산 남쪽 계곡의 청룡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그 뒤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一자형 사랑채와 ㄱ자형 안채가 연결된 ㄷ자형의 본채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남쪽에는 중문(中門)이 나 있어 최근 벽돌조로 개축된 행랑채에 연결된다.
사랑채는 4칸 반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남쪽에 툇마루가 딸린 2칸 온돌방이 있고 북쪽에는 1칸 반 대청이 있어 안채 건넌방에 이어져 있다. 장대석(長臺石) 기단에 놓인 춤 높은 초석 위에 네모 기둥이 세워져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안채는 1칸 건넌방, 3칸 대청, 2칸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에서 꺾이어 2칸 부엌이 있다. 건넌방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높은데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이 나있고 마루 아래에는 아궁이가 있다. 기단과 지붕 가구는 사랑채와 비슷하나 부엌 부분은 삼량가구인 점이 다르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남녀가 사용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특이한 공간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방의 창문은 머름을 댄 띠살창으로 가공이 정교하다. 집 뒤 언덕의 후원에는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이고 약간의 평지를 이루어 자연스런 맛을 남기고 있다.
(자료출처 : 안성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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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안성시청
이해룡(李海龍)
생몰연대 : 미상
조선 중기 서예가. 자는 해수(海叟), 호는 북악(北嶽). 본관은 광주(廣州).
1588년(선조 21) 사자관(寫字官)으로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필적(筆蹟)을 남겼다. 임진왜란 때는 역관(譯官)으로 일본과의 화의교섭에 힘썼다. 95년 동지중추부사, 1602년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에 이르렀고 경천군(慶川君)에 봉해졌다. 해서(楷書)에 뛰어났으며, 당시의 대가들로부터 한석봉(韓石峰)에 필적하는 명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금석문으로 사현(沙峴)의 양호묘비(楊鎬墓碑)를 썼다.
『문화재안내문안집. 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