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암(自在庵)은 동두천시향토유적지 제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140(상봉암동 산1-1번지)이다.
자재암에는 보물 제1211호로 지정된(1994.10.17)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密多心經若疏)』언해본이 보관되어 있다. 이 판본은 현재 보물 제771호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도서관본과 동일한 책이나 서울대학교본에 없는 전이 붙어있고, 교정인이 찍혀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훨씬 양호하다. 저지(楮紙) 목판본이며 목판본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것인 듯 표지가 없다.(동두천시청)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고려 광종 25년(974) 왕명으로 각규대사(覺圭大師)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覺玲禪師)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증건했다.
조선 고종 9년(1872) 원공선사와 제암화상이 퇴락된 이 사찰을 44간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靈源寺)라 개칭했다. 1907년(순종 원년) 정미의병 때는 이곳이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이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性波) 스님이 복원하여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고쳤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폐허가 되어 1961년 대웅전, 1971년에 요사, 1974년에 포교당과 원효대, 1977년에는 삼성각을 각각 건립하였다.(동두천시청)
자재암에는 여러 전설적 설화가 전한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는 이곳에 요석궁(瑤石宮)의 옛터가 있다고 하였다. 요석궁은 원효가 요석공주(瑤石公主)와 관계를 가졌던 곳이며, 나중에 원효가 이곳에서 설총(薛聰)을 길렀다고 한다.
자재암이라는 사명(寺名)을 갖게 된 것은, 원효가 요석공주와 관계를 가진 뒤 관음보살이 변신한 아리따운 여인의 유혹을 설법을 통해서 물리친 후, 다음날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고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상징하며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절 근처에는 조선태조가 즐겨 찾았던 백운대(白雲臺)와 폐정(廢井)이 있고, 백운대 밑에 있는 폭포는 원효가 노닐던 곳이라고 하여 원효대(元曉臺)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는 소요사(逍遙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암과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서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해지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출처 : 동두천시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홈페이지))
『문화재안내문안집. 1』
『경기도불적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