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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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사적 제422호
명칭(한자) 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0-09-16
소 재 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산36번지 외 지도로 보기
시 대 삼국시대

하남 이성산성(河南 二聖山城)은 사적 제422호로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산36번지 외 이다.

이성산성은 오래전부터 학계에 주목을 받아온 삼국시대 산성으로 1985년 한양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1986년부터 2010년까지 12차례의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00년 9월 16일 성곽을 포함한 성내 전 지역이 사적 제422호로 지정되었다.

이성산성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북쪽방향으로 내려오는 줄기와 만나 길게 맥을 형성하는 금암산의 줄기에 접해 있으며, 남쪽은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이 있으나 북쪽은 작은 구릉만 있어 한강 주변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산성은 배후의 평야 지역을 방어하고 강북의 적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성산성은 1986년부터 20년간 12차례의 발굴을 통해 건물터와 문터·성벽·저수지가 조사되었다. 건물터는 총 11동의 건물터가 노출되었는데, 장방형건물터가 5동, 부석식 건물터와 9각 건물터가 각 2동, 8각 건물터, 12각 건물터가 각 1동씩이 조사되었다. 그러나 성내에는 발굴조사된 11동의 건물터들 이외에도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성산성 건물의 특징은 다각형 건물이 많다는 점인데, 특히 아직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9각 건물을 비롯하여, 12각이라는 독특한 건물도 있다. 건물의 면적은 장방형건물의 경우 80~90평에 달하는 대형 건물이며, 다각형건물들은 20~30평 내외이다. 초석은 주변에 많이 있는 화강편마암을 이용했으며 다듬지 않은 자연석에 가까운 형태로 사용했다. 또한 부석식 건물은 내부에 벽을 세우기 위한 골을 만들어 칸을 나눈 구조를 갖고 있어 일종의 창고시설인 것으로 판단된다. 문터와 성벽은 함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남문터와 동문터 및 주변 성벽 일부가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이성산성의 성벽은 2차에 걸쳐 서로 다르게 만들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저수지는 2개가 조사되었는데, 남문터의 저수지는 산성 축조 당시 함께 만들어졌다. 그러나 상류의 토사가 급격히 흘러내려 저수지가 금방 메워지자, 그 자리를 다시 파낸 후 저수지를 다시 만들었다. 땅을 파고 진흙을 발라 돌을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규모는 평면 18×27m, 깊이 2.3m 정도이다. 또, 산성의 가장 중간부분이면서 대형 건물터가 많이 모여 있는 C지구에 있는 저수지는 21×15m 정도 규모로 네 벽을 다듬은 돌로 쌓아 올렸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이성산성은 발굴조사 초기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백제가 아닌 신라 말기~통일신라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고대산성이며, 한강유역을 둘러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주요 격전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성산성의 총 둘레는 1,665m로서 삼국시대의 성곽 중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해발 209.8m인 주봉을 중심으로 남쪽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이다. 형태는 부정형의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성 내부면적은 약 128,890㎡이다. 성벽의 안쪽에는 5m 정도의 회곽도(廻郭道)를 두어 병사들의 이동이 용이하도록 하였으며, 성벽은 자연지형을 따라 굴곡을 이루도록 쌓았다. 성이 급격히 회절(回折)하는 부분에는 별도의 치(稚)를 설치하였는데, 치의 길이보다 너비가 넓게 축조하였다. 성에는 북쪽·서남쪽·동쪽·남쪽에 문터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 중